진솔회축
홍치9년병진 생원진사방목
충재 권벌 종손가 소장전적 보물896호
소 재 지;
경북 봉화군
조선 중종 때의 명신이며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權橃)(1478∼1548) 선생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권벌(權橃)은 자(字)는 중허(仲虛), 호(號)는 충재(沖齋)또는 훤정(萱亭), 본관은 안동(安東),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 정원과 각 조의 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인종 1년(1545)에 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하여 삭주로 유배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 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모셔졌다. 전적은 약 3,000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지정된 것을 살펴보면『우향계축(友鄕契軸)』(1478),『사마방목(司馬榜目)』(1406),『문과잡과방목(文科雜科榜目』(1507),『충재자필일기(沖齋自筆日記)』등 15종 184책이다. 과거 합격자명단인 『사마방목(司馬榜目)』은 보물 제524호인 『정덕계유사마방목』보다 17년이 앞선 것이고, 『문무잡과방목(文武雜科榜目)』 역시 지금까지 간행되어 전해지는 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제603호로 지정된 『정덕계유문무잡과방목(正德癸酉文武雜科榜目)』보다 6년이나 오래된 본이다.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며, 『충재일기(沖齋日記)』는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역사적 자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시호는 충정(忠定), 저서에〔충재집(沖齋集)〕과〔충재일기(沖齋日記)〕등이 전한다.
우향계축 보물896-1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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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의 명신이며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權橃)(1478∼1548) 선생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권벌(權橃)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 정원과 각 조의 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상·중·하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묵서(墨書)이다. 상단은 우향계축(友鄕契軸)이란 제목이 쓰여 있고, 중단은 서거정(徐居正)이 직접 짓고 쓴 칠언고시장편(七言古詩長篇)이 초서체로 쓰여있다. 하단은 계원들이 앉은 순서대로 이름을 적은 것인데 권자겸(權自謙)을 비롯하여 13명의 명단이 적혀있다. 제 8에는 권벌(權橃)의 할아버지인 권곤(權琨)이 기록되어 있다.
홍치9년병진 윤3월 사마방목 보물896-2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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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의 명신이며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權橃)(1478∼1548) 선생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권벌(權橃)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 정원과 각 조의 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인종 1년(1545)에 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하여 삭주로 유배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 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모셔졌다. 이 책은 연산군 2년(1496)에 실시한 생원, 진사과에서 권벌(權橃)이 진사시에 합격했다는 내용이 담긴 방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 두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첫장에는 ‘은문(恩門)’이란 제목으로 시관(試官) 최응현(崔應賢) 등 12인(人)의 명단이 적혀 있고, 다음 장에는 생원시에 합격한 김극성(金克成) 등 100인의 명단과 이어서 진사시에 합격한 김우서(金禹瑞) 등 100인의 명단이 적혀 있다.
정덕2년3월 문무잡과방목 보물896-3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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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의 명신이며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權橃)(1478∼1548) 선생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권벌(權橃)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 정원과 각 조의 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인종 1년(1545)에 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하여 삭주로 유배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 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모셔졌다. 이 판본은 을해자본으로 중종 2년(1507)에 실시한 문무과 및 잡과시험에서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방목이다. 여기에는 권벌(權橃)이 문과별시 병과 제 2등에 합격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 문무과방목이다. 내용구성을 보면 문과방목, 무과방목, 역과방목, 의과방목, 율과방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국원종 공신녹권 보물896-4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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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녹권(功臣錄券)이란 나라에서 공신으로 인정한다는 증서를 말하는데, 이 녹권(錄券)은 선조 24년(1591) 윤 3월에 광국공신도감(光國功臣都監)에서 우찬성(右贊成) 권벌(權橃)에게 발급한 것이다. 광국공신(光國功臣)은 선조 23년(1590)에 종계변무(宗系辨誣:중국 명나라 서적에 조선 왕조의 조상이 잘못 기재된 것을 고치고자 청원하던 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것인데, 정공신(正功臣) 이외에 작은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공신의 칭호를 원종공신(原從功臣)이라 한다. 이것은 권벌(權橃)이 죽은지 43년만에 내려진 것이다.
신편고금사문유취 보물896-5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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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의 명신이며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權橃)(1478∼1548) 선생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권벌(權橃)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 정원과 각 조의 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인종 1년(1545)에 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하여 삭주로 유배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 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모셔졌다. 이 책은 원래 중국 송나라 때 축목(祝穆)이란 사람이 편한 것으로, 성종 24년(1493)에 35책으로 펴냈다. 크기는 가로 19㎝, 세로 28.6㎝이다.
역학계몽 요해 보물896-6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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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종 7년(1512) 2월에 왕이 당시 홍문관교리였던 권벌(權橃)에게 하사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송나라 주희(朱熹)가 찬한『역학계몽(易學啓蒙)』을 세조가 요해(要解)(요점을 간추려 해석함)하고 김국광(金國光) 등이 교정하여 세조 11년(1466)에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왕의 서문과 주희(朱熹)의『역학계몽서(易學啓蒙序)』가 있고, 끝에는 최항(崔恒)의 발문이 있다.
대학연의보 보물896-7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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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종 10년(1515) 7월에 왕이 당시 영천군수인 권벌(權橃)에게 하사한 것이다. 첫책의 표지에는 중종 10년(1515)의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주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다는 기록)가 있고, 첫장 상단 우측에 ‘선사지기(宣賜之記)’란 내사인(內賜人)이 찍혀 있으며, 하단에 ‘청암가보(靑巖家寶)’란 도장이 찍혀 있다. 청암(靑岩)은 권벌(權橃)의 아들인 권동보(權東輔)의 호이다. 현재 전하는 것은 54책 가운데 10책이 빠진 채로 44책만이 보존되어 있다.
근사록 보물896-8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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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종 14년(1519) 정월에 왕이 당시 승정원 도승지인 권벌(權橃)에게 하사한 것이다. 표지의 뒷면에는 중종 14년(1519)이란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주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다는 기록)가 있고, 첫장 상단 우측에는 ‘선사지기(宣賜之記)’란 내사인(內賜人)이, 하단에 ‘청암가보(靑岩家寶)’라는 소장자의 도장이 찍혀 있다. 청암(靑岩)은 권벌(權橃)의 아들인 권동보(權東輔)의 호이다.
주자대전 보물896-9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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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종 38년(1543)에 왕이 당시 좌참찬 권벌(權橃)에게 하사한 것이다. 표지 뒷면에는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주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다는 기록)가 있고, 첫장 상단에 ‘선사지기(宣賜之記)’란 내사인(內賜印)이, 하단에는 ‘권두인(權斗寅)’이란 소장자의 도장이 찍혀 있다. 현재는 전질 가운데 5책이 빠져있다.
유향설원 보물896-10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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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종 26년(1531)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이면(表紙裏面)에 ‘가정신묘(嘉靖辛卯)(1531) 맹하(孟夏) 감사(監司) 임사균(任士鈞) 소증(所贈)’이란 지기(識記)가 있고, 권수(卷首) 첫장 하단(下端)에 소장인(所藏印)이 찍혀 있는데, 판독이 불가능(不可能)하다.
을사정난기 보물896-11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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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명종 즉위년(1545) 8월에 정순봉(鄭順朋)·윤원형(尹元衡) 등이 대윤일파(大尹一派)인 윤임(尹任) 등 자기들에게 동조하지 않은 조정에 근무하는 신하들을 사사(賜死: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사약을 내려 자결하게 하던 일) 또는 유배한 을사사화의 사건전말을 소윤일파(小尹一派)의 입장에서 적은 것이다. 책의 앞뒤가 떨어져 나가고 권머리의 책이름이 적힌 첫장 상단 오른쪽에 ‘선사지기(宣賜之記)’란 선사인(宣賜印)이 찍혀 있고, 하단에 ‘창설재(蒼雪齋)’란 소장자의 도장이 찍혀 있다.
충재일기 보물896-12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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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벌(權橃)이 영천군수로 있을 때 쓴 일기로, 1514년 9월 14일부터 시작하여 1515년 10월 16일까지 보고 행한 일들을 적고 있다. 실질적인 일기는 영천군수(永川郡守)에 부임한 11월 2일부터 적고 있으며, 표지에는 “마음을 다해 백성을 사랑한다.”는 내용 등 수령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자필로 적은 문구가 있다. 표지서명은 닳아져서 분명하지 않으나, 『영양일록(永陽日錄)』으로 쓰여졌던 것으로 보이며 1책 19장이다.
춘양일기 보물896-13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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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벌(權橃) 선생이 하급관리를 시켜 쓴 일기로 중종 28년(1533) 5월 18일부터 중종 29년(1534) 3월말까지의 일기이다. 이것은 권벌(權橃)이 을사사화로 벼슬을 모두 빼앗겼다가 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간 후 밀양부사(密陽府使)로 임명되어 부임하던 일부터 임기동안 있었던 선생의 일상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1책 44장이고, 글씨체는 비교적 바르고 똑똑하게 썼으며, 선생이 붉은 먹을 묻혀서 쓰는 붓으로 문장을 수정 또는 추가한 부분이 상당수 발견된다.
심경 보물896-14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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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영종 때의 문신 진덕수(眞德秀)가 심(心)에 대해 논한 성현들의 격언을 모으고, 또 여러 선비들의 섬세하면서도 주요한 의논을 모아 주석으로 삼은 책으로,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것은 정조(正祖)가 춘저(春邸)에 있을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수정한 『수진심경(袖珍心經)』을 구현한 바가 있었다. 정조는『심경(心經)』과『근사록(近思錄)』은 의례(依例)가 서로 반대되는 책이고, 권벌(權橃)과 이황(李滉)의 수진사적(袖珍事蹟) 또한 서로 비슷하다 하여 특별히 『심경(心經)』도 아울러 충재(沖齋)가 예전에 살던 집에 내린다고 책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근사록 보물896-15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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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의 주희(朱熹)·여조겸(呂祖謙) 등이 함께 편찬한 것으로, 주돈이(周惇頥)·정호(程顥)·정이(程頥)·장재(張載) 등의 말에서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을 뽑아 편찬한 것이다. 책 표지 안쪽면에 영조 22년(1746) 남태온(南泰溫)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쓴 「내사식기(內賜識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주면서 쓴 누구에게 무슨 책을 언제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가 있고, 권 머리에 정조 18년(1794) 서영보(徐榮輔)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쓴『어제충정공권벌수진근사록(御製忠定公權벌袖珍近思錄)』과, 영조가 권벌(權橃)의 옛집에 내린 『근사록(近思錄)』을 가져다 보고 감회를 적은 것으로 서영보(徐榮輔)를 시켜 책머리에 붙여 권벌(權橃)이 예전에 살던 집에 되돌려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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